꽃 피는 외도와 조선업의 메카 거제도
에디터 : 박규동

8월 16일 일요일.
텐트에 쏟아지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늘은 산장지기님과 마찌님이 떠나가는 날이다. 교무실 처마 밑에서 아침밥을 끓여 먹고, 거제 버스터미널에서 산장지기님과 마찌님 부부를 전송하였다. 3박4일 간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고 그들은 떠났다. 한 우물을 깊이 파고, 산을 높이 오르는 산사나이가 산장지기님이다. 둘의 금실은 옆에서도 샘을 나게 했었다. 나도 산장지기님에게서 배울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합류하여 여행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웃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여정에 외도는 없었다.
산장지기님을 보내고나서 예정대로 하루를 쉬기로 하였다. 운이 좋게도 버스터미널을 청소하는 미화원 아주머니를 만나 창고에 자전거를 맡길 수 있었다. 쉬는 날이라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해금강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해금강행 버스는 해금강을 가는게 아니라 거제도를 한 바퀴 돌아서 한 시간 20분만에 해금강에 내려 주었다.
흐린 날에 바람도 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윤구가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을 바다에서 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에 그러라고 한 것이 사단이 되었다. 1인당 1만7천에 배표를 샀는데 이 배들은 해금강을 돌고 모두 외도를 갔다 온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외도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윤구의 제안에 해금강을 돌아 외도를 갔다.









외도 선착장

외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안섬=내도, 밖섬=외도이다. 밖섬은 육지로부터 밖에 있다는 섬이다. 섬은 꽃밭이었다.
외도는 정원이 98명인 유람선이 10분 간격으로 수없이 드나드는 섬이 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구경을 온 사람들이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도 꽃으로 피어나는 게 신기하지 않은 곳이 외도였다.
평균기온이 온대라 식물의 분포가 풍부하여 아열대식물까지도 넉넉하게 수용돼 있었다. 최근에 외국에서 입양한 식물종자도 보였다. 식물의 분포 뿐 아니라 배열의 깔끔함도 좋았다. 30여 년을 이렇게 가꾸고 꾸민 정성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시간 동안 외도를 돌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윤구의 선택에 고마울 뿐이다.

쉬는 날이라 텐트도 치지 않고 찜질방에 들었다.
저녁은 찜질방 앞 마당에서 해 먹었다. 남해안으로 휴가온 많은 가족들이 찜질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새로운 숙박문화가 생긴 것이다.
거제도는 조선업의 메카가 되어 번창하고 있었다. 거제도가 섬이었을 때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너무 많이 변하고 있었다. 거제를 에워싼 당동만 전체가 조선산업지구가 되어 있었다. 인구증가와 더불어 개인평균소득이 2만 불을 훨씬 넘는다고 했다.
모처럼 이것 저것 생각하며 욕탕의 뜨거운 물을 즐겼다.
체중이 5kg 빠졌다.

거제도는 조선업의 메카가 되어 번창하고 있었다.

찜질방 로비에 자전거를 보관해 주었다.

8월 17일.
마산까지 가기로 한 날이다.
찜질방을 나와서 아침 취사할 장소를 몰색하다가 눈에 띄는 김밥집을 찾아 들었다. 여행 이후 처음 먹어보는 김밥이라 맛이 좋았다. 한 사람이 두 줄씩 먹고 두 줄씩을 더 사서 길을 떠났다.
거제에 들어올 때에 맞바람을 맞으며 힘이 엄청 들었었는데 오늘은 뒷바람이 불어 주었다. 거제대교를 다시 건넜다. 이 다리도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거제대교를 지나 장문리를 가는데 밭을 갈던 어떤 농부가 한마디 인사를 한다.
"그래, 거 잔차 타고 댕기면 재미나니껴?"
갑자기 대답이 궁해졌다. 뭐라고 대답해야지 골똘하면서 그들을 지나쳐 버렸다. 너무 당연한 물음에 당연한 대답을 잊어버린 것이다.
"재미나니껴?"

긴 언덕을 바라보며 풀밭에 앉아 싸온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먹다보니 진짜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삶은 계란이나 찐빵이 있으면 더 운치있을 게 아닌가!
통영시 노산리에 있는 E-마트에 들렸다.
물도 사고 소변도 볼 참이었다. 내가 밖에서 자전거를 지키고 있는 동안 아내와 윤구가 마트에 다녀왔다. 얼마 후에 아내는 마트용 짐수레를 끌고 나왔다. 짐이 바리바리다. 포도 한 상자에 토마토, 귤, 포도주스 세 개가 붙은 1+2도 있었다. 빵도 한 상자. 물......  마트가 개장을 하면서 할인을 많이 해 주었던 것이다. 트레일러 구석구석을 찾아 물건을 집어 넣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긴 언덕을 바라보며 풀밭에 않아 싸온 김밥을 먹었다.



77번도로를 타고 마산을 키 잡아 북쪽으로 향해 갔다.
전형적인 해안도로였다. 오르면 내리막이고, 내리면 오르막이다. 고성군 장좌리에서 좌회전하여 동해에서 1010번 도로를 만나 바다 건너로 당황포를 바라보며 달렸다. 한가로웠다. 어쩌다 한번 차가 지나갔다. 양촌리에서 외산리 돈막-동진교까지 이어지는 해변 길은 자전거여행에 좋았다.
당항만으로 지는 태양도 그럴 듯 하였다. 동진교를 지나 마산시 근곡리에서 2번 국도를 만났다. 갑자기 불어난 교통량 때문에 머리가 어찔하였다. 2번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3km 더 온 다음 진북에서 자기로 하였다. 지도에서 초등학교를 발견하고 윤구에게 학교를 찾아보자고 했더니 학교보다 더 좋은 커다란 운동장을 찾아냈다. 실내경기장과 트렉은 철망 안에 있었고 주차장으로 이용되었을 것 같은 넓은 공터를 찾은 것이다. 화장실도 있었고 물도, 전기도 있었다. 도로에서 적당히 거리가 있어 차량소음도 피할 수 있고 빨래를 하여 널 곳으로 철망이 있었다.
별 세 개짜리 호텔이었다.

떠날 때부터 윤구는 노무현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 가고 싶어했다.
내가 갈 생각이 없으면 윤구 혼자라도 가겠다고 했다. 윤구의 뜻있는 생각에 우리도 동행하여 내일은 봉하마을에 들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집 떠나온지 열엿새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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