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할 때가 있고 비를 맞으며 갈 때가 있다.
에디터 : 박규동

2008년 8월 23일
 오늘 아침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서울 쪽에는 비가 멈췄다고 하는데 동해안은 어림도 없다. 밤 늦게까지 비가 올 거라고 한다. 꼼짝없이 갇힌 것이다. 갇혔을 때에는 체념이 약이다. 때를 기다리는 걸 이럴 때 배우게 된다.
 개이는 날이 있겠지!

 내가 세 번째로 사업을 엎어 먹은 건 98년 외환파동 때이다.
 잘 나가던 사업체가 부도가 난 것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무너졌지만 나한테까지 파동이 미칠 줄은 몰랐다. 갚아 줄 돈 보다 받을 돈이 훨씬 더 많았는데도 자금이 융통되지 않아 줄 도산에 엮인 것이다. 하루 아침에 죄인이 되었다.
더구나, 큰 아들과 둘째가 나의 회사에 근무를 했었고 막내는 대학 졸업이었다. 졸지에 4부자가 실업자가 된 것이다. 민망하고 난감하였다.


 그 때, 아내가 나섰다.
 "이제부터 내가 나설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길로 아내는 외대 앞에 자그마한 옷수선 가게를 열었다. 그 저력이 우리 가족의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들도 결혼을 하였고 직장과 사업을 잘 꾸려 가고 있다.
 거의 백 억을 날렸지만 나는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돈은 원래부터 돌고 도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내는 가게를 그만 두지 못하고 있다. 놀면 뭐하냐고 하면서 말이다.
 아내는 이번 여행을 위해 가게를 한 달간 닫았다. 그 용기에도 내가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때를 아는 것이다.
 돈을 벌 때와 쓸 때를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돈으로 하여금 때를 정하게 하면 나는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소나기를 피할 때가 있고 비를 맞으며 갈 때가 있다. 나그네가 그 순리를 알면 여행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틀 간이나 비를 피해 찜질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우리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럴 때에 쉬지 못하면 언제 이런 달콤한 시간을 갖을 수 있단 말인가?
 찜질방 안에 있는 식당 주인과 매점 아줌마까지 이제는 친해졌다. 사연 많은 찜질방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찜질방 이틀째 저녁에 올림픽 야구 결승전이 있었다.
 강호 쿠바와 한 판 붙었다. 한 점을 리드해 가던 한국 팀이 9회 말 수비에서 세 명을 출루시키는 궁지에 몰렸다. 1 아웃에 만루 상황이다. 쿠바 감독은 대타자를 내 보내어 판세를 한꺼번에 역전 시킬 것 같았다. 우리 팀의 투수도 바뀌었다. 타자는 공을 쳤고 수비는 2루와 1루에서 두 명의 주자를 동시에 잡는 더블 플레이를 했다. 1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것도 예선과 4강 토너먼트를 한 번도 지지 않고 전승으로 얻은 것이다.
 금 메달이다!
 명승부에 전국이 들썩거렸을 것이다.
 
 이틀째 찜질방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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