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온천을 지나 부산에 도착하다
에디터 : 박규동

2010년 08월 13일
우포늪-창녕-부곡  대천장호텔찜질방   34km


사람의 오감으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씹을 수도 없는 세상이 초록에 물들어 억만 년을 새김질 하고 있었다. 억만 년의 시간을 타고온 우포늪의 아침이다.
비가 내렸고, 새들이 흰옷을 입고 날았고, 이마배를 탄 어부가 노란 비옷을 입고 있었고, 물비린내를 머금은 안개가 피었고, 나무벌에 미류나무가 섰고, 화석을 닮은 붕어가 물장구를 쳤고, 물뱀이 가시연 가에서 개구리를 만났고,  내 흰머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아침 10시까지 비가 내렸다.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가 얼른 밥을 하면서 한편으로 텐트를 걷었다. 외딴집 아줌마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잘 잤어예? 우야 비가 밤새도록 그래 오노. 이거 오이짱아친데 좀 먹어 보이소. 그라고, 묵은김치 좋아하면예 내 몇 포기 갖다 줄게예!"
남자처럼 생긴 모습에 마음 쓰는 게 똑뿌러진다.
고마운 마음에 우리는 돈 만 원을 드렸다. 아줌마는 좋아했다. 사람이 귀한 곳에서 말 상대가 있어서 좋았다며 집에 가더니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우리 남편이 막걸리를 디게 좋아하는기라. 내 얼른 가서 이 돈으로 막걸리 한 통 사 와야겠어!" 하며 안게 낀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져 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우포늪의 아침, 그것은 문학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태고의 초록천국 그런 것이었다.

11시에 우포늪을 떠났다.
창녕에서 다시 5번국도 남쪽을 탔다. 25번국도를 타자마자 주유소 앞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여행자 두 사람을 만났다.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천안에서 부산까지 가는 최장운님과 아들 지호군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들과 함께하는 자전거여행!
15년 전에 나도 막내 아들 창민이와 두 달간 호주대륙횡단을 했었지! 허허벌판 사막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경험을 아들과 나누었었지. "나는 죽어도 좋으나 제발 아들만은 살려 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절히 빌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 창민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다음 달에 결혼을 하지! 그래, 고맙다! 창민아!



도로안내표지에 부곡온천이 나타났다. 하비님과 아내는 부곡온천에 들렀다 가고 싶어 했다. 그러는 게 좋겠다.
부곡은 "부곡하와이"란 관광명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유명한 온천관광지이다. 숱한 기회에도 우리는 와 보지 못한 곳이었다.
부곡온천에 닿은 시간은 3시 쯤, 우리는 마을 앞 공원에서 점심을 해 먹었다. 아줌마가 준 묵은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압력솥에 새 밥을 만들어 먹었다. 하비님이 부침개를 만들었다. 찜질방에서 먹자는 것이다. 끼와 해학이 철철 넘치는 하비님이다.
느긋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평화가 일었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처럼만 살 수 있다면!

부곡온천에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이 여러 개 있었다.
하비님은 원탕이 나오는 24시간 대중탕을 찾아야 한다면서 탐색에 나섰다. 결국에 호텔에서 겸하고 있는 찜질방으로 갔다. 자전거를 보관하는 문제로 주저하고 있던 차에 호텔 지배인이 나타나서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다. 호텔 로비 한 편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찜질방으로 들었다. 여행 이후에 처음 대하는 문명시설에 잠깐 어리둥절 하였다.
따뜻한 온천 물에 목까지 몸을 담궜다.
아득하였다.
어쩜 우포늪에 몸을 담구고 태고의 초록을 꿈꾸고 있는 듯 아득하였다.

 

2010년 08월 14일
부곡-삼랑진-김해-부산-삼락강변공원    78km     35도33'12.58X128도24'12.00

누구의 꿈이 더 위대하거나 훌륭한 건 꼭 아니다.
비록 작은 꿈이라도 내가 꾸는 꿈이야말로 나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 꿈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미도 빛을 잃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다 꿈을 잃은 건 아니다. 다만 젊었을 때보다 꿈이 작아졌을 뿐이다. 찾지 않으면 꿈은 잃어버리지만 찾아보면 작은 꿈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나의 작은 꿈, 낙동강 자전거여행이 무르익어 드디어 부산에 닿았다.
태백을 떠난지 꼬박 2주일만이다.

오늘, 꼭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하비님의 일정을 맞추느라 일찌기 부곡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곱 시에 찜질방을 나와 근처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사 먹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79번국도를 따라 남으로 내려와 다시 낙동강을 만났다. 낯익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반가웠다. 낙동강은 이미 나를 품고 흘러 가고 있었다.

준설공사가 한창이었다. 하남에서 잠시 쉬었다. 농협하나로마트에 들려 물과 설레임을 하나씩 사 먹었다. 우리의 행색을 본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길거리에서 옷장사를 하며 한편으로 지방신문의 객원기자 일도 한다면서 간단하게 취재를 하였다.


삼랑진에 도착하였다.
하비님이 삼랑진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서울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삼랑진에서는 서울행 버스가 없다는 것이다. 밀양이나 김해, 아니면 부산에 가야지만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삼랑진에서 하비님을 떠나 보내고 아내와 나는 천태산-원동-물금-화명으로 해서 부산으로 가려고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궁리한 끝에 김해로 가서 하비님을 버스로 보내고 우리는 구포를 거쳐 부산으로 가기로 정했다.

김해!
작년에 남해안여행을 하면서 김해에서 받은 깊은 상처를 생각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땅이다. 김해 졸부의 밴츠 차량에 아내가 자전거를 탄 채 받히고도 그 운전자와 김해남부경찰서 박00순경으로부터 받은 수모와 불공정을 생각하면 그 억울함 때문에 잠을 설칠 때도 많았었기 때문이다.
삼랑진에서 점심을 먹고 김해를 향해 쉬지않고 달렸다.
김해버스터미널에서 50분 후에 성남행 버스가 있다는 하비님을 남겨두고 아내와 나는 부지런히 김해를 벗어났다.

하비님은 이번 여행에서 열흘 간을 함께 했었다.
청량산 앞에서 만나 김해까지 그 더위와 태풍과 폭우를 함께 견디며 왔다. 50대 여자의 체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자전거를 잘 달렸고, 어렵고 험한 일을 솔선했다. 눈에는 정이 넘쳐났고 입에는 미소가 많았다.
그래서, 하비님을 떠나보낸 우리의 단촐함이 더 적적했을 지도 모르겠다.
고마워요! 하비님!

구포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35번 국도를 타다가 삼락강변공원으로 들었다.
거센 바람이 구름을 몰고와서 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낙동강을 따라 잘 짜여진 삼락공원에는 이미 여러 곳에 텐트가 처져 있다. 화장실과 수도가 가까운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옆에 비가림 대형 천막이 있었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 투성이라서 그 옆에 텐트를 치고 천막 밑에서 취사를 하였다.
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쓰고있는 텐트는 노스페이스사의 Expedion급 2~3인용이다. 악천후에 강한 종류이다. 특히 바람에 강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것인데 비가림에도 손색이 없었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땀에 젖고 비에 다시 젖은 꾸꿉한 몸을 텐트에 누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하였다.
아내의 손을 잡고 텐트에 드러누워 그 간에 지나온 이런저런 추억을 회상해 본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남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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